결국 실패했다.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도전은 이것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영구아트무비가 쓰러지며 그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집과 회사가 압류되고 땡전 한푼없는 신세가 됐다는 기사까지 떴다. 불과 몇달전 '라스트 갓파더'를 개봉하며 차기작을 그려왔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슬랩스틱 개그의 일인자로 국민들을 웃겼던 그가 연락조차 닿지 않는 신세가 됐다.
따져보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자신을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영화나 만들던 개그맨이라고 얕잡아본다며 충무로와 대립각을 세웠고 12년전 정부는 그런 심형래를 신지식인 1호로 선정하고 그의 영화 도전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기술로 헐리우드와 맞서겠다는 의지로 만든 디워라는 작품때문에 MBC에선 일개 영화 하나를 100분 토론의 주제로 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는 이상으로 너무 대단하게 생각했다. 어린이 영화를 만들던 시절부터 영화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자신이 각본을 쓰고 자신이 감독을 하고 '라스트 갓파더'에선 다시 주연으로 출연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대단한 스토리없이 화려한 볼꺼리만 제공하고도 히트하는 것을 보고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 보단 자신의 재산을 털어 오랫동안 CG에 집착하기도 했다.
거기다 '영구'로 거뒀던 큰 성공은 시간이 갈수록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했다. 심형래의 전성시대가 어떤 시절이었나. PC방도 콘솔 게임기도 없는 아이들은 딱지를 치고 팽이를 돌렸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강에 나가 썰매를 탔다. 현재 관객의 눈높이와는 비교조차 힘들다. 주위 조언을 듣지 않고 이미 20년이나 지난 성공 방정식을 미국에서 그것도 어린이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고집했다. 그는 계속해서 영화를 자신의 손안에서 주무르길 원했다.
과거 충무로가 유치한 어린이 영화로 성공한 심형래를 싫어했듯 심형래도 충무로를 싫어했다. 그것은 영화를 정공법으로 배우지 않은 열등감에 가까웠다. 더 이상 나는 바보 영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거 같았다. 영구는 심형래의 역할 중 하나일뿐 종합예술인이 되고 싶었던 것같다.
거칠 것없는 실행력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과도 일맥 상통한다. 많은 국민들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에 어이없어 하는 것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의 능력으로 모두 다 할수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면 주위 사람들이 피곤해진다. 거기다 그런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지금까지 성공했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려 든다.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이 청계천에 이어 4대강이라는 토목 공사에 목을 매다는 것처럼 어린이 영화 시절 북치고 장구치며 성공한 심형래는 미국 무대에서도 혼자 뛰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IT 선진국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영구아트무비도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영구로 돌아왔고 최후의 수단은 끝내 실패했다.
심형래는 정말 웃겼다. 대다수는 그의 몸개그에 쓰러졌고 아이들은 다들 영구 흉내를 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영구라는 바보 캐릭터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진짜 바보'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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