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뻥연비'로 불려오던 공인 연비를 현실화 시키겠다는 발상은 누구나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실 과거 미국의 연비 측정법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을 지금까지 유지해오다 한미 FTA한다니까 미국 눈치때문에 바꾸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웃긴 꼴이긴 하다. 어쨌든 새로운 연비 기준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때문에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풀옵션이 1700만원이 넘는 경차 레이. 새 기준으론 리터당 13km도 안될 것이다. |
하지만 정부가 연비 기준만 바꾼다고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패턴이 단기간에 변화되진 않으리라는건 분명한 사실이다. 기름값 비싸다는 불만이 아무리 쏟아져도 여전히 중형차, 준대형차가 잘 팔리고 수동 변속기는 찾아보기 힘들며 디젤은 더럽다는 편견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정책적인 유도가 없다면 바뀌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나마 최근엔 디젤 수입차들이 판매량을 높여가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산차들은 디젤 차종을 내놓는데 인색하다. 물론 여기엔 심리적으로 가격적인 저항도 존재한다. 500원하던 과자가 600원 700원 되는건 이해할 수 있어도 자동차는 가격의 단위가 다르다.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원래부터 비싸다는 생각을 가진 수입차와 달리 국산 준중형은 1천만원대, 중형은 2천만원대라는 무의식적인 가격 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솔린 엔진보다 단가가 높은 디젤 엔진을 탑재한 차들을 출시한다면 판매량이 나오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실제로 한국GM의 크루즈 디젤 모델의 경우 타 본 사람들의 경험으로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 판매로 충분히 이어지진 않고 있다. 한국GM이 현대기아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 거기엔 준중형이 2천만원이 넘는다라는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수입차 판매량 상위권에는 폭스바겐의 소형 디젤 라인업들이 포진해있는 아이러니라니.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생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소형차와 수동 변속기의 홀대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차가 작다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준중형에 비해 그리 싸지도 않으면서 다른 혜택은 주어지지 않아 판매량이 나오기가 힘들다. 또 자동차가 많아지며 정체가 심해질수록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자동 변속기를 고집하는 운전자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 제도 개선을 통해 판매를 촉진시킬 순 없을까? 경차처럼 취등록세를 면제까진 아닐지언정 연비가 좀 더 높은 이런 차들에 대해 50% 수준의 감면 혜택정도는 주어야 한다고 보인다. '기름 아껴 쓰자'라는 말을 백번천번하는 것보다 실제로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소비 패턴을 바꾸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친환경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값 비싼 하이브리드같은 차들을 권하기전에 현실적인 대안을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연비 측정법을 변경하여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형 디젤차와 같은 '지금 당장 구입할 수 있는' 차들의 판매를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아끼라는 강요만 한다면 제대로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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