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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5

좋은 차가 정말 잘 팔릴까?



 얼핏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듯 하다. 하지만 좋은 차가 잘 팔린다는 말은 현실을 부정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정말 좋은 차가 잘 팔린다면 지금의 상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차들 그 중에서도 대표 주자인 GM은 77년간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군림했지만 방만한 경영을 펼친 끝에 경쟁력을 상실하고 부도 위기에 내몰렸었다. 그런 GM이 올해 다시 내줬었던 1위 자리를 되찾을꺼란 예상이 나오는건 어떤 이유일까. 또 30~40년전만 하더라도 전투기를 만들던 모노코크 바디 기술에 수평 대향 엔진을 갖춘 스바루에 비하면 조잡한 수준에 머물렀던 토요타가 혼다, 닛산 등 일본 시장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친건 왜일까.



쉐보레 실버라도, 쉐보레는 가장 친숙한 미국 브랜드 중 하나이다





 그건 좋은 차가 잘 팔릴꺼라는 상식이 틀렸단 뜻이다. 국산차 옹호론자들은 현대기아의 파워트레인 기술이 대중차 브랜드들 중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올라 출력으로 비교하든 연비로 비교하든 상당히 경쟁력 있는 회사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현대기아차가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리진 않는다. 자동차는 컴퓨터와 달리 출력, 토크같은 숫자 몇가지로만 모든 것을 나타내기엔 힘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엔진 스펙을 떠들며 미국차는 기름 퍼먹는 귀신에 잔고장이 많고 일본차도 이미 국내 업체들이 기술적으로 다 따라잡은 수준이라 주장하며 별 것 아닌듯 말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차가 팔려나가는 숫자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각종 언론은 외국에서도 현대기아가 잘 나간다는 기사를 쏟아내며 찬양하지만 아직은 자신들이 뛰어넘었다는 그 외국 기업들을 추격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에쿠스의 미국 판매 가격은 약 6천만원. 현대가 고급 브랜드였다면 1억에 내놨겠지.





 시장에서 물건 사는 사람들이 모두 똑똑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본인이 제일 똑똑한줄 알겠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결국 소비자는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지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따지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자동차 관련 사이트들과 블로거들이 자동차에 대해 토론하지만 정작 누구도 차를 구입할땐 그런 것을 참고하지 않는다. 99% 확신 할 수 있다.





리바이스는 지금도 청바지를 통해 젊음의 이미지를 판다.



 모든 이성적인 판단의 결론이 머리속에 들어가 있어도 사람이란 결국 '어 씨발 저거 죽이는데?' 하면서 상품을 결제한다. 그리고 그것엔 이유가 없다. 어떤 스위치가 켜지듯 작동한다. 여자들이 명품 가방 사면서 가죽을 어떻게 처리해서 무슨 실로 바느질을 했는지 따지질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자들이 비싼 명품 쇼핑하는건 낭비라고 보면서 당신들이 차를 살땐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믿는건 개그나 다름없다.


 그럼 횡성수설하는 이야기는 접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기술적으로는 이미 비슷한 수준에 오른 메이저 업체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여전히 GM과 토요타가 최강자의 자리에 있는건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역사, 이미지, 친숙함,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능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검은색 T형 포드만 팔던 포드를 밀어낸건 GM의 다양한 색상의 자동차들이었고 스바루의 기술력이 결집된 차를 밀어낸건 조잡한 차에 외관과 옵션으로 상품성을 높인 토요타였다. 처음엔 새로운 상품으로 관심을 끌고 긴 시간에 걸쳐 믿음을 얻고 그런 친숙함을 무기삼아 소비자의 지속적인 선택을 받는 것. 그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처음에 소비자의 눈을 얼마나 잘 현혹시키느냐에 모든게 달린거지 차를 얼마나 잘 만들었냐와는 상관없었다는 말이다.


호불호가 갈릴수는 있으나 이런 디자인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기아가 최근 디자인에 그렇게나 신경을 쓰고 어떻게든 뭔가 조금 더 '있어'보일라고 노력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자동차라면 쉐보레나 포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눈에, 폭스바겐이나 푸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다. 단순히 가격때문에 사는 차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파워트레인의 경쟁력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뿐이지 판매량이 늘어난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차에 10단 변속기를 올린들 사고 싶은 마음이 안드는 것과 똑같다. 곤충룩이건 뭐건 어쨌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훨씬 쉽다.


 하지만 껍데기만 중요시하는 일반 대중들과 달리 여전히 기계적으로 좋은 차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회사를 비판하는 상당수의 목소리도 그들의 상품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아서 나오는 불만이다.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봐도 상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가를 낮추기 위한 결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처로는 소비자의 입을 막을 수 없다.


 좋은 차가 잘 팔린다는건 결국 소비자들이 기업들의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고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나라에도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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